📔일기장 52. ✈️ 21일의 휴가

나는 왜 (해외)여행을 떠나고 싶지 않을까.

2024. 8. 6.

📔일기장 52. ✈️ 21일의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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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의 휴가

4곳의 회사, 재직 기간 총 10년 2개월, 직장인 13년 차에 처음으로 3주 리프레시 휴가를 쓰게 되었다. 회사가 나를 21일이나 쉬게 해주다니, 참 감사한 일이다. 연차를 사용해서 2주 정도 유럽 여행을 다녀온 적은 있지만, 해외여행 없이 21일을 쭉 쉬는 건 처음이다. 언제 휴가를 써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도돌이표 같은 고민을 하다가 여름이 지나기 전에 휴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사랑하는 계절에 쉼표를 찍고 싶었다.

휴가의 시작점은 정했지만 어떻게 휴가를 보내야 할지는 여전히 물음표였다. 늘, 긴 휴가에는 해외여행을 떠났다. 2019년 12월, 벨기에 맥주여행을 마지막으로 해외여행을 가지 않았다. 2021년 7월, 독립 이후로 여행의 갈증을 느끼지 못했다. 대신 국내 여행을 열심히 다녔는데 '오징어 청춘'이라는 모임으로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 덕분이다. "떠나자" 그 말을 좋아했다. 누구든 떠나자는 메시지를 보내면 그날 바다에 도착했다. 그 시절에는 여행을 떠나는 우리가 좋았다.

일기를 쓰다가 답답한 마음에 구글에 여행을 검색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여행'을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나무위키에서 여행의 개요, 역사, 관광과의 차이, 나라별 인식, 여행 격언까지 읽고 나서 다시 연필을 들었다. 일기장에 문장을 옮겨 적고 촌스럽게 반박했다. (나무위키) 세계적으로 여행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는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며⋯ (내 생각은) 타국에서 자유롭게 생활하긴 했지만 멀리 떠나지 않아도 자유로울 수 있으며, 여행을 하는 동안 건강의 질은 딱히 좋지 않았다. (나무위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며, 견문을 넓히고, 삶의 의미를 깨닫는 식의 인식이 있으며 이 때문에 꾸준한 인기가⋯ (내 생각은) 일상을 조금만 벗어나도 새로운걸, 지나치게 새로운 건 피곤하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지금 여기서 삶의 의미나 행복을 찾을 수 있는데 왜 해외까지 여행을 떠나야 할까. 어쩌다 이토록 해외여행에 부정적으로 변했을까.

멀리 여행을 가려면 자기만의 목적이나 떠나야만 하는 이유, 심지어 여행의 결과물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마지막 해외여행에서는 2주 동안 맥주를 마시며 취향과 견문을 넓혔고, 직전 여행의 기록은 첫 독립출판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고싶은 마음이겠지만 결정적으로 마음이 서지 않는다. 4년 가까이 해외여행을 가지 않았더니 어디는 꼭 가봐야 하고, 무엇은 꼭 먹어야 하는 계획을 세워야 할 것만 같다. 계획 세우는 일을 좋아하지만 여행 계획은 예외라서, 우선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맥주 견문을 넓히기 위해 떠났기에 오줌싸개 소년은 까맣게 잊은 브뤼셀, 울고 걷기 위해 숨었던 오지마섬, 라일락 향기에 취하고 싶어서 떠났던 삿뽀로, 오래 묵힌 낭만과 로망을 만나러 간 파리, 낯선 나라를 더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은 쫀득한 여름 구름을 한국에서 즐기고 싶다. 새천년 호푸를 필두로 가족끼리 모여서 치맥하면 어린 아이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성북동 바이브가 낯설기에 이곳의 삶은 여행 같다. 여전히 훌쩍 떠나는 일은 그리우니까 언젠가 떠날 수 있겠지. 해내고 싶거나 해야만 하는 일을 잠시 내려둘 용기가 생기면 비행기를 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내 속도의 여행을 그려본다.

2024년 8월 7일 수요일 | 오늘의 노래 : Pale Blue Eyes - The Velvet Under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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