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66. 아침 — 시작의 또다른 이름

빛이 오기 전, 마음을 고요히 놓는다.

2025.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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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 시작의 또다른 이름

밤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며 희미한 빛이 돌기 시작하는 시간, 동이 트는 순간의 새벽녘을 특히 좋아한다. 해가 저물어 어둑해지는 무렵, 빛과 어둠의 경계가 만들어내는 황혼(黃昏)의 시간도 매력적이지만, 오늘도 결국 여명(黎明)이 이겼다.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 어스름한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 고요 속에서 시끄러운 마음을 마주하고 나를 살피는 시간이다.

푸르고 따듯한 기운 위로 보라빛이 맴돌다가, 어느 순간 차가운 주황이 스며들고, 이어 회색 물감을 떨어뜨린듯 묘한 색으로 변해가는 하늘이 좋다. 오늘의 일출은 7시 26분, 나는 6시 반쯤 일어나 7시 무렵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출 30분 전의 하늘은 작은 감탄사 하나쯤은 절로 나오게 할 만큼 아름답다. 일몰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그 시간대의 하늘을 마주하는 일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무엇보다 새벽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아리따운 세상과 자연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웅장함의 일부가 된 듯한 안도감이 든다. 가고자 하는 방향도, 잘 살아내고자 하는 마음도, 세상을 아름답게만 바라보고 싶은 욕심도 새벽빛 속에서 차분히 채워진다.

방에 불을 켜자니 조금 밝고, 이대로 글을 쓰자니 또 조금 어둡다. 이제 막 어둠에서 빛으로 적응 중인 눈에는 차라리 불을 켜지 않는 편이 더 편하다. 세상이 밝아지는 시간에 생각을 글로 옮기는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다행이다. 짙푸른 어둠이 걷히고 밝음이 돌아오면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한다. 직박구리의 부산한 수다를 듣다 보면 '아, 하루를 좀 더 일찍 시작해볼까? 뭐라도 해볼까?' 하는 소박한 용기가 생긴다.

아침은 매일 찾아온다. 새로운 시작의 기회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주어지기에, 어제가 아무리 힘들었을지라도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힐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간다. 아침이라는 시작, 그 조용한 설렘. 반복되는 하루처럼 보여도, 아침은 언제든 삶을 바꿀 기회가 나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주체성을 되찾는다. 해내야만 하는 일들, 하고 싶지 않아도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일들, 마음은 굴뚝같지만 망설이며 미뤄두었던 일들... 그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나를 돌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 바로 아침이다.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면 감정과 생각이 뒤엉켜 진심을 마주하기 어렵다. 그래서 조금 애써서라도 아침에 일어나 찻물을 끓이고, 노트를 펼쳐 책상 앞에 앉는다. 부드럽게 춤추듯 미끄러지는 블랙윙 연필 한 자루만 있다면 무엇이든 쓸 수 있을 것 같고,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사각사각 적어 내려간 글자 속에서 비로소 '진짜 나'와 마주한다. 때때로 손이 생각보다 더 빠르게 나를 써 내려가기도 한다. 지금처럼. 줄과 줄 사이에 억지로 끼워넣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가는 글씨를 바라보면 묘한 해방감이 찾아온다. 아침에 글을 쓰는 이유다.

오랜만에 일기장을 메일로 보내고 싶어졌다. 김광석 1집을 LP로 틀어두고, 빨래가 돌아가는 시간 동안 이 글을 천천히 다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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