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작업실 미하다>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다. 이제 빼도 박도 못 한다. 일기장에 쓴 말을 뉴스레터 일기장에 써버렸으니까 휴. 그동안 그린 습작들과 캔버스 몇 개, 그리고 벽을 전시할 계획이다. 사실 처음 작업실을 계약할 때만 해도, 여기서 꽃 작업을 하고 싶었다. 공간 작업, 그러니까 스케일이 아주 큰 공간 장식을 하고 싶었다. 수업을 들어도, 워크샵을 들어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있었다. 집에서 본식 부케 하나만 만들어도 꽃 관리부터 부케 배달 당일까지 제약이 많았다. 집은 집이니까, 혼자 사는 집도 아니고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이니까, 공간장식 연습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틀 올데이 워크샵 공간장식 비용을 생각하면, 5번 수업 들을 돈으로 24개월 작업실 월세를 낼 수 있었다. 수업과 공간, 둘의 가치를 비교할 수 없지만, 돈은 비교할 수 있었다. 새로운 영감과 자극, 더 이상 수업의 인풋보다는 아웃풋이 필요했다. 2020년 6월 25일, 그렇게 나는 작업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본업이 있으니 평일에는 회사 일을 해야 했다. 주로 주말과 월요일 오전에 작업실에 갈 계획이었다. 내 속도로 작업하니 공간 아트페인팅은 3개월 이상 걸렸다. 지금까지 그린 그림 중에 가장 오래 그리고, 치열하게 고민한 작품이었다. 사실, 페인트 작업하는 동안 작업실 집주인 선생님과 10번쯤 술을 마셨고, 직전 세입자인 디자이너와 콜라보 작업을 하느라 내 작업실보다 그의 작업실에 더 자주 갔다. 마침 둘 다 예술가였다. 나는 예술을 하고 싶었고, 예술이 무엇인지 몰랐다. 문인화를 그리는 소석 선생님과 자신의 브랜드로 하고자 하는 말을 펼쳐내는 패션 디자이너와 시간을 보내며, 치열하게 길을 잃었다. 그들이 마냥 부러웠고 마냥 멋있어 보였다. 그 당시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줬던 브랜드가 <작업실 미하다>의 전 세입자, 나보다 딱 1살 많은 디자이너, 페인터스(PAINTERS)였다.

우리는 계속 길을 잃어버리자

우리가 원하는 아름다운 도전들은 언제나 완벽하지 않아

고작 이만큼 오려고 여기까지 달려왔던 게 아니잖아

다름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의 예술이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예술가는 아니고

발전은,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얼마나 달려왔는지가 아니야

어제의 너보다 얼마나 더 많이 왔는지, 그게 너의 발전이야

너의 모든 지식들과 경험들, 모든 너의 성공과 실패들, 그리고 지금의 상태, 새로운 도전들

발전이 없는 사람들이 새로운 시도들에 대해 뭐라고 평가를 하는 건지

행복한 사진들로 가득한 행복하지 않은 우리들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니야

만약 네가 시도했고 실패했다면 축하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 시도조차 하지 않거든

우리 안에 있는 작은 예술가를 잃지마

생각들은 대부분 이루어지니까

시작했던 것들로 끝내자

우리는 모두 길을 잃어버리리니까

  -  SS20 PAINTERS milk and honey

 미하다 일기장 17page. 2022. 02. 26 토요일

 집에 오니 한겨울의 인터뷰가 책이 되어 도착해있었다. 2022년의 나에게 해주고픈 말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올해는 더 자주 길을 잃어버리자.' 더 많이 도전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그 끝에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보자고. 그때의 나는 더 부지런히 분홍 벽을 찾고 싶었나 보다. 몇 분 후면 일요일이다. 아무 버스나 타고 떠나기 좋은 날이지. 내일은 잃어버릴 길을 찾아 나서야겠다.

 ‘내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 지금 당장 주저 없이 낯선 여행길에 나설 수 있는 강한 의지는 또 얼마나 듬직한가. 내 꿈을 좇고 싶다가도, 불안하거나 자신감이 없어서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게 우리네 보통 인생 아니던가. 마침내 사랑하는 그것과 한 몸으로 녹아드는 행복을 누리는 고양이 '하스카프'를 어떻게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고양이 하스카프를 보노라면 나도 강하고 씩씩하게 살아야지, 그리고 반드시 행복해져야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 몬테로소의 분홍 벽 추천사, 임경선

 미하다 일기장 3page. 2022. 10. 12 토요일

 오늘의 노래 : 페인터스와 콜라보 작업하며 들었던 노래 꿈 (Feat. 키비 of 이루펀트, 효빈)

 오늘의 가사 : 이렇게 꿈을 향해서 달리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어, 내가 봤을 때는 몇 명 없거든, 근데 우리 항상 꿈꾸잖아. 나는 그래, 나는 진짜 내가 내일 망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거 해가지고 망했으면 좋겠어. 네가 왜 막잔하고 나가는지 난 알겠어. 안주도 남았는데 내일 위해 가는 네 모습, 하고픈 걸 위해 아님 누굴 위해서 … 공식으로 풀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게 우리의 인생이야 좀 더 기다려. … 항상 부푼 네 가방에 든 게 뭔지 궁금했어. 물어보려다 말았지만 네가 먼저 꺼내서 내게 보여주던 스케치북 몇 점의 크로키. 너 그림 그리는지 몰랐어, 솔직히 부럽기도 해 나 재주는 없다 한들 좋아해 너 같은 능력자들. 남 앞에 처음 꺼냈다며 쑥스러워 하던 너 얼마나 고독이란 방석 깔고 앉았을지. 똑같은 울타리 안에 꾸물대며 편한 세상에 자신만의 꿈을 내밀기가 쉽지 않아.  

 언제부터였을까. 꽃 작업을 하다가, 행복함을 느끼면 불안해진다. 평상시 느끼지 못하는 행복이 벅차다. 출근해서 느낄 수 없는 그런 거. 분명 꽃 작업을 하면서 몸도 힘들고(상상 이상으로 힘들다) 허리도 아프고, 손이 건조해서 불어 터져 따끔거려도, 좋다. 이루지 못한 꿈이기 때문일까. 언젠가의 낭만으로 남겨두기에, 현실과 본업이 버겁다. 또 일을 하다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어떡하지. 출근해서 공황장애가 오면? 숨을 못 쉴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 또 그런 순간이 오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지난 직장 생활을 돌아보면, 3곳의 회사에서 버티지 못할, 혹은 버티기 싫은 순간에 언제나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번에는 비겁하게 도망가고 싶지 않다. 공황장애나 호흡곤란 등 심리적 불안의 원인을 정확하게 마주하고 싶다. 도망가지 않을 거다. 이걸 마주해야 더 가까워질 것 같다, 꿈에게

 다시 오늘의 일기로 돌아와서, 2022년 9월 20일 화요일

 <작업실 미하다>라는 공간이 생기고, 미하다에서 만난 사람들이 기폭제였다. 한동안 작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업실이 생긴지 9개월 후, 공황장애로 출근길 지하철만 타면 죽을 것 같았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포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감당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괜찮아지기까지 1년 4개월 정도 걸렸다. 덕분에 작업실에 가는 이유는 꽃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숨어서 울고, 숨어서 숨 쉬었다. 현실에서 도망쳐서 안전할 수 있는 공간이 <작업실 미하다> 밖에 없었다. 회사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고, 작업실에 올라가는 길에 소리 내 펑펑 울고, 무서우면 숨을 참았다. 호흡곤란은 그런 거였다. 몸이 숨을 참고 숨을 포기해버리는 것. 그래도 미하다 문만 열고 들어가면 괜찮아졌다. 옥상에 떠다니는 구름을 보고, 멀리 북한산을 바라보고, 따듯한 차를 한 잔 마시면 괜찮아졌다. Magic Shop 가사처럼.

 문을 하나 만들자, 너의 마음속에다가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곳이 기다릴 거야

 따듯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저 은하수를 올려다보면 괜찮을 거야

 이제 그 시간을 보여주려고 한다. 연진이 떠나고, 나의 꿈이었던 별 하나가 사라지고, 지금의 길에 서서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쉼 없이 흔들리던 시간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엄마에게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너 작업실 있는 거 아니냐고, 진짜 솔직하게 말하라고 했는데 꾸역꾸역 우기느라 참 힘들었다. 이제는 작업실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내년 봄에는 작업실로 엄마를 초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장 초대하고 싶었던 사람, 그리고 가장 초대하기 무서웠던 사람인 엄마를.

 P.S. 이해를 바라기보다 솔직하게 털어두면 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좀 이기적인 딸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