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금요일 pm 11:30 ~ am 12:04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일기장을 꺼내는 건 참 오랜만이다. 사실, 오늘 하루를 채운 감정은 조급함과 우울이었는데, 3시간의 수련 덕분에 감정의 원인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먼저 우울감은 이번 주 첫 재택근무 때문이었다. 동료들과 직접 마주 보고 일하다가 온라인으로 만나는 게 어색했다. 오후 내내 이어진 온라인 미팅은 오프라인으로 회의할 때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몸은 편했지만 몰입과 집중이 떨어졌다. 조급함은 계획한 일을 완벽하게 끝내겠다는 아침의 원대한 다짐 때문이었나? 음, 아닌 것 같다. 다른 이유였던 것 같다. 묘한 찝찝함을 남기며 4시에 퇴근 버튼을 누르고 낮잠을 잤다.

 금요일이다. 평일과 주말 사이에 금요일이 있다. 이 둘 사이에 선을 긋는 방법이 하나 있다. 아침 7시 요가 수련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퇴근하면 다시 요가와 명상 수련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금요일의 아침과 저녁에 두 번 듣는 요가 수업은 Restorative (레스토러티브: 이완과 휴식을 목적으로 한 자세에서 오래 머무르는 명상적인 요가), Mindfulness (마인드풀니스 마음 챙김 명상, 바디스캔) 수련하는 루틴을 유지한다. 오늘 요가 수련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깊은 이야기를 나눠 주셨고, 기억하고 싶어서 명상 수련 전 짧은 쉬는 시간에 노트 앱에 기록을 남겼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야만 합니다. 그 솔직함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진실되게 말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진심으로 바라는 일을 찾아내는 건 행복하고 설레는 일입니다. 그걸 찾는 건 언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솔직하기 위해서는, 나아가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내면의 이완과 휴식이 중요합니다. 충분히 쉬고 이완된 상태에서 내면의 진짜 목소리를 마주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요가 명상에는 요가 니드라가 있습니다. 요가 니드라는 자기만의 Sankalpa(쌍칼파)를 다짐합니다. 산스트리어로 ‘결심, 소망’을 뜻하는 쌍칼파는 자신이 원하는 것, 이루고 싶은 것을 나타내는 짧고 간결한 다짐을 말합니다. 마지막 자세입니다. 혹시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쌍칼파를 만들어보세요. 한번 정한 쌍칼파는 이루어질 때까지 마음에 품고 수련에 임하면 됩니다.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애써 외면하며 20대를 보냈다. 이루지 못한 소망과 어릴 적 꿈들이 떠올랐다. 사랑, 꽃, 좋아하는 일, 그림을 그리는 일, 글 써서 돈 벌기 등 마음을 하늘 삼아 구름을 둥둥 띄웠다. 딱 1가지 일을 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진짜 원하는 일이 아닐까 봐 두려웠다. 그럼에도 결심했다. 딱 한 가지 소망을 가슴에 새겼다.

 쌍칼파를 이루기 위한 결심과 다짐은 잠재 의식 깊은 곳까지 닿는다고 한다. 구체적인 계획, 꾸준한 도전, 시도하고 실패하는 경험까지도 과정으로 삼는다. 일례로, 명상 선생님은 내일 27시간 동안 100km를 완주해야 하는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데, 60~70km에서 실패할 예정이라고 했다. 실패를 계획한 출전이지만 결국 완주를 위한 과정일 뿐이다. 이번 실패로 두려움과 불안을 지울 거라고 하셨다. 이번 주 내내 실패할 구간을 꼼꼼하게 뛰어보며 연습했고, 보다 구체적인 계획과 연습으로 내년에는 100km를 꼭 완주하고 싶다고 하셨다. 나에게는 그런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이 없다. 내 삶을 즐기고 있지만, 그저 즐기는 것과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은 다른 일 같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한평생 풀잎 개수만 세거나 병뚜껑이나 모으면서 행복하게 살지만 그보다 가치 있는 목표를 추구할 능력이라곤 없는 사람을 생각해보라. 그 사람이 아무리 행복하고 자기 삶을 즐긴다 해도 우리는 그가 훌륭한 삶을 산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내 삶을 사랑한다. 삶에 대한 사랑은 긍정적이고 존경할 만한 자질이다. 이는 또한 윤리적인 자질이기도 하다. 적절히 지닌다면 삶을 개선해준다. 우선 삶을 더 즐겁게 만들어주며, 주변에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그건 이런 자질이 모종의 전염성을 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이런 사람 옆에 있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기도 하다.* 적절한 고삐가 없었다. 쌍칼파를 만든 이상, 고삐와 목표와 계획을 만들어 삶을 채찍질 해야겠다. 그 동안 당근을 너무 많이 줬다.

*심슨 가족이 사는 법_호머와 아리스토텔레스 p.38

 10월 17일 월요일 am 10:12 ~ 10:19

 책 읽기 전에 짧은 명상을 했다. 오늘 나에게 찾아올 감정이라는 길잡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아가고 싶다. 기쁨, 슬픔, 수치심, 암울한 생각 모두 같은 온도로 대하고, 그저 살아가다 만나는 반가운 손님으로 여기고 싶다. 아침에 31번째 모닝페이지를 썼는데, 처음으로 아침의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 오전 명상 수업에 가지 않았고, 명상 다음 수업인 요가 수련을 할 수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아침부터 찾아온 수치심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그저 손님으로 여기지 못했다. 수치심과 슬픔도 기쁨과 설렘과 똑같은 손님일 뿐이다. 특히 수치심, 이 감정을 불청객이라고 생각했다. 저녁이 오기까지 점점 더 초조하고 불안할테지. 조마조마하게 마음 졸이며 불안해서 속이 타겠지. 아 또다시 감정에 압도당했다. 그래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를 향해 마지막으로 온 마음을 쏟아내고 싶다.

 방금 통화를 마치고서 쓴 글

 지난 금요일 명상 수련 중에 묘한 경험을 했다. Sankalpa(쌍칼파)라는 개념과 ‘진정 원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명상 수련을 시작했다. 요가원에서 바디스캔을 할 때는 누워서 수련하는데, 누워서 하는 명상은 너무 어렵다. 어느 피곤한 날에는 잠깐 잠든 적도 있다. 우선 금요일에는 확실히 잠들지 않았다. 명상을 마칠 때 싱잉볼을 울려서 수련생을 깨운다. 천천히 일어나 수련을 마치는데 처음으로 싱잉볼 소리를 듣지 못했다. 잠들어서 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호흡에 집중하고 있었고, 생각은 모두 지운 상태였다. 당황스러웠다. 수련을 마치고 질문했다. 잠들지 않았는데 왜 깨어나지 못했는지 물었고, 명쾌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물었던 질문에서 대답을 찾았다. 명상 수련을 시작하기 직전에 나눈 대화가 꼭 필요한 이야기였는데 기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명상을 시작하고 숨을 내뱉을 때마다 온몸에 새겨 기억하고자 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의식도 무의식도 아닌 어딘가에 있었다. 신기했고, 불안했다. 앞으로 내가 마주하게 될 것들의 의미, 깊이,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애써 찾아낸 것을 피하면 어떡하지? 명상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망설이는 순간이 늘어난다.

 나에게 수련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함이다. 나에게 당당하고, 단단하고 싶다. 진짜 원하는 일과 내면에 숨긴 의미와 의도와 소망과 꿈을 마주하고 싶다. 그 순간 좌절하고 잠시 무너지더라도 그것을 발견하고 해결할 방법을 깨닫게 될 테니 무서워하지 말자. 그때 의식을 두었던 곳, 그 깊은 호수 아래서 내가 마주하게 될 이야기와 꿈을 그려내자. 더 또렷하고 더 선명하게, 그것이 나답게 사는 방법이고 진정한 행복이니까, 이렇게 내가 나로 사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마 평생을 나는 누구인가 고민하고, 나는 무엇이다 정의하고, 그 정의를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며 살아야 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평생 정답을 찾지 못할지라도 괜찮다.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스스로 만들어낸 나’로 살아갈 수 있다면 괜찮다. ‘타인이 원하는 나’ 혹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나’로 살지 않으면 된다.* 이 글은 내가 나에게 하는 다짐이다. 매 순간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모든 것이 나를 빚어낸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일을 해야 한다. 나다운 일을 하고, 나다운 길을 걷고, 그 길이 혹여 많은 사람들이 정답은 아니라고 말할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일이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나를 사랑하는 일이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나만의 방법이다. 

 이 순간,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글을 쓰는 것이다. 가장 사랑하고 싶은 일이다. 이 글을 보내는 일이며, 보여주기 위함은 아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꾸준히 나를 담은 글을 쓸 뿐이다.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감정을 삶의 길잡이로 삼기 위해서 일기를 쓰고, 퇴고를 한다. 매주 1편씩 보내는 글은 한 발자국 더 나은 모습으로 나를 빚어낸다. 글을 짓고, 나를 빚고, 연필에 의지하며 더 오래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MAP OF THE SOUL : PERSONA 'Perso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