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토요일 7:48am

 이웃이 하나, 둘 떠난다. 노아님을 시작으로 지수님, 태드가 떠나고, 상혁님이 떠나는 중이다. 오늘은 작년 7월 31일, 나와 같은 날 입주했던 서린님이 떠난다. 한때였던 16층의 전성기가 완전히 저물고 있는 느낌이랄까, 마치 노을처럼. 그 정점에 상혁님이 있는 것 같다. 지수님, 노아님, 태드가 떠날 때 까지는 노련하게 보낼 수 있었다. 다행히 근처로 이사한 코노친구의 짐을 옮기며 새 집에서 책장도 조립하고, 그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집들이도 했다. 지수님과 노아님은 앞으로 쭈욱 N팟으로 볼테니, 떠남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더 깊어질 사이라고 느꼈으니까. 나의 인간관계 사전에 없던 분류 <이웃-친구> 덕분에 새로운 이별과 감정을 배우고 있다. 아마 상혁님이 짐을 다 빼고 떠나면, 정말 실감이 날 것 같다. 어쩌면 조금 더 일찍 이사 준비를 시작할지 모르겠다.

 아- 이 감정의 정점에 상혁님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그는 아직 떠나는 중이기에) 서린님이 대신 정점을 찍었다. 사실 우리는 자주 마주치는 이웃은 아니었다. 맹그로브 입주 후, 꽤 빨리 안면을 튼 이웃이는데, 첫 만남에 서로의 취향과 가치관, 이데올로기를 나눈 사이가 되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이웃과 같은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꾸준한 영감과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둘-셋-넷-다섯이 떠났다. 아, 이러다가 나만 남겠다. 은수님에게 미안하지만, 내가 먼저 떠나야겠다. 더 이상 이웃을 떠나보낼 자신이 없다. 느슨한 이웃을 넘어, 든든하고 (특히 밥 먹을 때) 끈끈했던 친구를 보내고 싶지 않다. 이런 종류의 슬픔은 겪어보지 않아서,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아서,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내가 먼저 맹그로브를 떠나야겠다.

 어제 서린님의 마지막 MSC를 다녀왔다. 사람들 사이에 앉아있을 힘이 하나도 없어서 요가원에서 수련을 하려고 했는데, 서린님의 마지막은 꼭 함께하고 싶었다. MSC를 시작하면 꼭 자기소개를 나누는데, 오늘 입주한 사람부터 한 달 혹은 세 달쯤 맹그로브에 살고 있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머쓱하게 1년 3개월이 조금 넘었다고 말했고, 우연히 서린님과 같은 날 입주했다는 반가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섭섭했나보다. 아직 설렘으로 가득할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말을 해버렸다. ‘서린님도 맹그로브 나가면 얼굴 피는거 아니에요~?’ 충분히 여기서 잘 살고 있던 사람이었고,  한 챕터를 잘 마무리하고 나가는 사람일 텐데 뾰족한 마음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이웃-친구들은 맹그로브를 나가면 더 잘 살던데, 나는 그럴 자신이 아직 없어서 그랬나보다.

 다시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이웃으로 지낼 수 있을까? 이런 삶의 형태를 다시 선택할 날이 올까? 어찌 보면 참 웃기다. 처음 독립을 결심한 계기는 혼자 잘 살아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침 리추얼에 방해받지 않고, 저녁 일기 쓰는 시간에 집중하고, 혼자의 시간을 충분히 누리며 살고 싶었다. 그렇게 쓰다 보면 두 번째 독립출판도 할 수 있고, 막연히 바라는 어떤 모습에 가까워질 것이라 꿈꿨다. 독립 후 정신 차리고 보니, 언제나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계획과 다른 형태로 살아가는 내 모습이 어색해서 더 자주 동굴에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내가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만, 우선 씻고 자야겠다. 내일은 장례식장에 가야 하니까. 내일도 이별이다. 올해는 온통 이별으로 가득하다.

 11 월 7일 월요일 9:04pm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본가에 머물렀다. 토요일 아침에 장례식장에 갔고, 오후에 잠깐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일요일은 새벽부터 일어나 다시 장례식장에 갔고, 점심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내 사람과 함께였다. 엄마, 아빠, 혜주, 그리고 친구들까지- 혼자의 시간이 적었다. 문득, 맹그로브로 돌아가기 싫어졌다. 집에 더 이상 이웃친구들이 없기 때문일까,

 11월 8일 화요일 6:42am

 요즘 내 감정을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는 ‘공허함’이다. 누군가와 즐겁고 신나게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 공허함이 생긴다. 이건 아주 옛날부터 느끼던 기분이다. 오랜 친구를 만나도, 요즘 가장 친한 사람들과 놀다 와도, 너무너무너~무 재밌는 시간을 보내더라도, 방에 돌아와 혼자가 되면 텅 빈 느낌이다. 공허함이 가득하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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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미션동동동 명상 수업을 마치고, 명상 선생님과 피드백을 주고받다가 갑자기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미나님, 무엇이 인간의 행복을 결정할까요? 인간의 행복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잠깐 고민하다 ‘자아실현’이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어제 큰 시험을 치루다 마주한 문제 중 하나였다는데 나에게 꼭 공유해주고 싶은 내용이라는 말을 먼저 붙이며 <무엇이 행복을 결정하는가?>는 하버드에서 역대 최장기간에 걸친 연구*로, 1938년부터 지금까지 연구를 통해 얻은 메시지는 행복은 부나 명예, 혹은 열심히 노력하는 데 있지 않았으며, ‘우리를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관계였다’고 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동시에 애써 외면하고 있던 무언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를 찾아봤는데, 행복한 삶을 위한 관계가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는 3 가지로 요약된다.

*관련 사이트 : https://www.adultdevelopmentstudy.org/

 잘 알고 있다. 사람을 좋아해서, 내가 만든 울타리 안으로 한 번 들어오면 에너지를 써서라도 잘 해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함부로 사람을 들이지 않는다. 울타리를 넘어 벽까지 부수고 들어오면, 나보다 상대를 더 위하게 되니까, 그 결과가 항상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중학생 때는 친구와의 관계에서 질투와 집착으로 한 발자국 떨어져 응원하는 법을 배웠다. 연인 관계에서는 커다란 마음은 불필요한 두려움과 기대, 실망을 안겨준다는 걸 느꼈다. 그때 만났던 사람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기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꽁꽁 숨겨둔 마음을 한 번에 털어놓은 결과는 이별이었다. 속은 후련했고, 마음은 쓸쓸했다. 그래서 깊은 관계가 두렵다. 일정 기준 이상 친해지면 살짝 거리를 두는 습관이 생겼다. 동굴에 들어가 충분히 혼자의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밖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세상을 살핀다. 친해지는데, 마음을 여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의 구름 같은 속도로 이웃을 사귀고 싶었는데, 맹그로브는 달랐다. 여긴 숨는다고 숨을 수 없다. 나는 더 깊은 동굴을 파고 들어갔고, 밥 먹으러 내려오라는 이웃들 전화에 와르르 동굴이 무너져서 어느새 이웃들과 밥을 먹고 있었다. 맹그로브에서는 ‘느슨함’을 강조했지만, 내가 느낀 우리 사이는 끈끈했다. 지나치게 밥 먹는 것에 끈끈했다. 나를 생각해서 밥 하나, 수저 하나 더 놓았다는데 당장 내려가야 하는 게 맞았다. 고마우니까. 가족만큼 끼니를 챙겨주던 노아님과 태드에게는 이 페이지에 모두 담을 수 없는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음식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며, 식사를 하는 것이 관계 형성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이제서야 깨닫는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점심시간 ‘구성원 식사 케어’라는 업무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그 일이 왜 존재했는지 이제는 납득할 수 있다.

 독립하니, 원래도 좋아하던 엄마 반찬과 아빠 밥이 자꾸 그립다.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언제든 만날 수 있던 이웃들이 자기만의 길과 집과 힘을 찾아 떠나간다. 아, 이웃 하나 없는 동네로 이사를 가면, 어떻게 다시 시작할까 막연한 걱정이 든다. 산과 자연이 가까운 동네로 이사를 가려고 했는데, 그들은 말이 없고 함께 밥을 먹을 수 없다. 모르겠다. 그냥 또 ‘모르겠다’는 말로 일기장을 마무리하고 싶다.

P.S. 문득 든 생각, 맹그로브 magic shop 문은 1706호가 아니라 16층 키친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