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하철 1호선에서 노트북을 도둑맞고 멘탈이 탈탈탈탈 털린 후, 정신을 차리고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789,056원짜리 글감이다.'

 노트북을 잃어버린 후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진술서까지 썼더니 노트북 도난 사건을 말하는 게 너무 지친다. 일기장을 마지막으로 주변에 소식을 전해야겠다. 아직 소식을 전하지 못한 친구들은 일기장 구독자들이니까, 내 일기장을 읽어줄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지하철에서 맥북을 도둑맞은 상황은 대략 이러했다. 14시 11분, 지하철 1호선 오류동역에서 승차 후 지하철 의자 위 선반에 노트북 파우치를 올려놨다. 노트북을 올려둔 선반 자리 2칸 옆에 자리가 생겨서 파우치는 선반에 그대로 올려두고 앉았다. 14시 53분, 신설동역에서 내릴 때 노트북 파우치를 꺼내려고 했는데 파우치가 없어서,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여기 있는 물건 못 보셨나요?'라고 물어봤다. 사람들은 이전 역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들고 내렸다고, 빨리 경찰에 신고하라고 말했다. 신설동역에서 내려서 지하철 칸 위치를 사진으로 찍어두고, 바로 112에 신고했다. 상황을 설명한 후, 동묘앞역에서 창신 경찰서에서 출동한 경찰 두 분을 만났다. 사건은 지하철에서 벌어진 도난 및 절도 사건이며, 지하철 경찰대가 이곳으로 출동 중이며 사건이 인계될 거라는 설명을 듣고, 잠시 후 지하철 경찰대를 만났다. 이후 지하철 CCTV를 통해 범인을 찾았지만, 범인은 제 것인 양 내 노트북 파우치를 들고 동묘앞역에서 게이트로 나갔고, 16시 20분에 다시 동묘앞 게이트로 지하철을 탔다. 동묘앞역을 나갈 때 노트북 파우치를 들고 있던 범인은 16시 20분 다시 동묘앞역으로 들어올 때 노트북 파우치 대신 검정색 봉다리를 잔뜩 들고 있었다.

 '이놈 찐이네, 팔아치우고 쇼핑했네.'

 라고 경찰은 말했다. 사실 경찰은 CCTV에서 범인을 발견한 처음부터, 한두 번 훔쳐본 모양새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집과 작업실을 계약할 때도 찍지 않았던 새빨간 인주를 엄지 손가락에 잔뜩 묻혀 4번이나 인장을 찍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경찰에게 동묘앞역에서 노트북을 찾아봐도 되냐고 물어봤다. 경찰은 만약 노트북을 찾으면 112에 바로 신고하고, 노트북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동묘 벼룩시장을 뛰어다녔지만 노트북을 찾을 수 없었다.

 노트북 파우치 안에는 맥북 뿐만 아니라, 지난 3박 4일 동안 속초에서 작업한 미하다 원고가 들어있었다. 아직 백업하지 않은 A4용지 90매 분량의 원고 워드 파일은 바탕화면에, 직접 종이에 프린트에서 수정할 부분을 적어둔 A4용지 48매가 북스탠드와 함께 들어있었다. 속초 워케이션 마지막 날 2022년을 회고한 기록도, 속초 소품샵 속품 사장님에게 선물 받은 귀여운 수달 마스킹테이프와 다이소에서 샀지만 너무 예쁜 윤슬 마스킹 테이프도 들어있었다. 롯데월드타워 사무실 출입증, 명함, NOT YOURS라고 적혀있는 리플렉터 키링, 2019 성수동 송년회 굿즈 키링, 애플 마우스와 충전기, 원데이 렌즈, 인공눈물 2개, 떡메모지, 아직 한 장도 쓰지 않은 새 노트, 일주일 전에 산 북스탠드, 세운상가에서 산 파란머리앤 구구단 책받침 등등이 들어있었다. 잃어버려서 가장 속상한 물건은 사실 노트북은 아니다. 아직 책으로 나오지 않은,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두번째 독립출판(예정)인 초고를 잃어버린게 화났다. 노트북은 포맷해서 팔면 누군가 사용하겠지만, 초고는 버려지겠지. 너무나 소중한 내 글이, 이렇게나 추운 겨울날 어딘가로 버려진다는 생각을 하면 시리도록 가슴이 아프다. 

 이 글이 789,056원인 이유는 내가 잃어버린 노트북 맥북이 회사 업무용 노트북이고, 노트북이 최종적으로 분실(절도죄로 수사 중인 도난 사건이지만 결국 분실이기에..)로 확인될 경우 손망실 처리(비용 변상)이 이루어져야 하며, 2020년 1월에 지급받은 내 맥북의 변상 비용은 789,056원이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2년마다 노후 자산 교체를 진행해서 노트북을 바꿀 수 있는데, 이때 노트북을 개인적으로 구매할 수 있다. 10년만에 쓰는 맥북과 꽤나 정이 들어서 교체 시기가 오면 맥북을 구매하려고 했는데, 잃어버렸다. 심지어 돈은 돈대로 나가게 생겼다. 어휴. 그러니까 미나야.. 도대체 왜 노트북 파우치를 올려놓고 노래를 들으면서 인스타그램 스토리 하이라이트(링크)를 만들고 있었던거니. 라고 스스로에게 잔소리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