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혼자 코인노래방에 다녀오는 길, 16층 공용키친에 얼음을 가지러 갔다. 오랜만에 만난 16층 사람들에게 새로산 별 모양 탬버린을 자랑하던 순간, 이거다 싶었다. 나의 노래방 역사를 꺼내 보자고-
노래방의 첫 기억은 20년 전, 2002년부터 시작된다. 본격적으로 노래방에 다니기 시작한 건 중학생 즈음, 1시간에 5,000원 하던 학교 앞 노래방은 1시간을 부르면 1시간 가까이 보너스 시간을 넣어주셨다. 시험이 끝나면 은비, 민지, 영경이, 성미와 노래방에 (끌려)갔다. 그때의 내가 MBTI 검사를 한다면 I(내향) 100%가 나올 것 같은데, 요즘이야 내향적인 성향을 애정하지만 (나는 내향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자신의 에너지가 내면에 집중된 사람은 혼자 보내는 시간으로 건강한 에너지를 채워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나는 지독하게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다.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10대의 나에게 노래방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혼자 어울리지 못하는 나를 챙겨주는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쌓아갔다. 이제는 은비, 민지, 영경이, 성미와 함께라면 노래방에서 방방 뛰어놀 수 있지만, 그 시절 친구들은 노래방에 가고 싶은 날이면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보곤 했다. ‘미나야.. 혹시.. 노래방 괜찮아?’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나는 꾸역꾸역 노래방에 따라갔다. 대부분의 시간을 노래방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다 나오곤 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열아홉 처음 사귄 남자친구가 노래 부르는 걸 엄청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노래방도 자주 갔는데, 한 시간 내내 노래를 듣기만 했다. 친구들도 이 녀석도 즐거운 표정으로 당당하게 노래를 부르는 게 참 신기했다. 10대의 내가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를 모두 합치면 10곡도 되지 않을 거다. 노래방에 가면 자리만 지키고, 뮤직비디오를 보다 잠들었으니까. 10년 가까이 노래방을 즐기는 방법을 깨우치지 못했고, 어쩌다 부르는 노래 한 곡에 쩔쩔매다 울고 싶었고, 힘없는 목소리와 빗나갈 것 같은 음정에 자존감을 뚝뚝 떨어뜨린 노래방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건 스무살 부터였다. 당시 학교에서 재밌다고 소문난 영어마을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양다리였던 첫 남자친구의 여자친구에게 문자로 이별을 통보받았다. ‘앞으로 철이에게 연락하지 마세요 언니’ 참으로 당돌한 문자였다. 알콜과 사랑이 싹튼다고 소문난 영어마을, 내 사랑은 사라졌지만 무지막지한 양의 술이 풀리던 날이었다. 마지막 날이라고 영어마을 노래방이 개장했고, 충분히 취했고, 새우깡을 안고 있었고, 알콜의 힘을 빌려 노래방의 참된 맛에 눈뜰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 녀석을 생각하면 이것 하나만큼은 고맙다. 덕분에 노래방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까.
큰 문제 없이 친구들과 신나게 노래방을 즐길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20대의 나에게 노래방은 알콜의 힘을 빌려야만 솔직해질 수 있는 공간이었다. 노래방 가자는 말을 꺼내려면 소주 두 병은 마셔야 했다. 서른하나가 된 지금도 여전히 다른 사람과 노래방에 가는 것은 어색하고 부끄럽다. 그 시절 코인노래방이 생겨버렸고, 누군가와 함께 노래방을 가기보다는 혼자 코인노래방을 자주 찾게 되었다. 심지어 작년에 독립하고 둘러보니 옆 건물에 코인노래방이 있어서 더 자주 가게 되었다. 일기를 쓰다가 얼마나 자주 코인노래방에 갔을까 궁금해서 정리해보니, 2021년 10월 1일부터 오늘까지, 코인노래방에 총 56번 갔더라... 약 10개월 동안 225,000원을 1,1771시간 동안 441곡을 불렀다. 56번 중 혼자 갔던 건 51번, 누군가와 함께 갔던 건 4번뿐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 편한 사람들과 노래방에 가는 것은 물론 즐겁지만, 여전히 선곡의 고민과 첫 소절을 부르는 긴장감과 내가 선택한 노래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등 이런저런 고민에 혼자 가는 노래방이 더 편하다. 그럼에도 ‘떼창’의 묘미에 사람들과 어울려 신나게 코노를 다녀온 날이면 그 노래를 꼭 기록해두고 혼자 부르곤 한다.
사실 최근에 최악의 노래방 경험을 갱신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 충분한 마음의 준비 없이
- 노래방에 같이 갈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들과
- 어느정도 친분은 있지만 사실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이런 이유에서 부정적인 기억으로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하지 못해서 지독하게 싫었나 보다. 그날 나에게 마이크가 넘어오려는 순간, 급하게 화장실을 간다고 뛰쳐나왔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서 나오니 비가 억세게 내리고 있었다. 안에서 내쉬지 못한 한숨을 구름과자로 만들고 비를 맞으며 돌아갔다. 돌아가보니 이제 가고 싶은 사람은 집에 가도 된다는 분위기라 잽싸게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결국 또 혼자 코인노래방에 갔다. 그날의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씁쓸하고, 오묘했다. 500원을 넣고 딱 한 곡만 부르고 나왔다. 신나고 빠르고 경쾌하고 재미난 요즘 18번 곡인데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줄도 알아야지’ 부분을 부르다가 괜스레 울컥했다. 종일 싫은 걸 꾹꾹 참아낸 날이었다. 가사 내용과 상반된 나의 하루가 비교되며 초라해졌다.
혼자서라면 한없이 솔직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면 솔직하기 어려운 공간, 내게 코인노래방은 그런 곳이다. ‘쓰는 나’와 ‘말하는 나’ 그리고 하나를 더해 ‘노래하는 나’. 언젠가는 노래하는 나도 ‘쓰는 나’만큼 거침없이 솔직하면 좋겠다. 여기까지 쓰다가 집 근처에 직장인 취미 보컬 레슨을 검색해봤다. 노래를 잘하면 불편한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잠을 설치는 밤, ‘조만간 보컬레슨 스튜디오에 전화해봐야지’ 다짐해보지만 잘 모르겠다. 확신할 수 있는 건, 내일도 코인노래방 출석 도장을 찍을 거라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