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11일 일기장

 뜬금없이 바다로 떠나자고 외치는 친구들이 있다. 모임명 <오징어청춘>은 살짝 미친 모임이다. 실제로 2021년 6월 11일, 오징어청춘이 처음으로 바다로 떠난 날 기록을 꺼내 보니, H은 ‘미친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때 난 ‘미친 짓은 달콤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H는 수요일에 속초에 다녀왔고, 이틀 뒤 금요일 또 속초로 떠났다. H가 다녀온 숙소를 예약하고 D을 기다리며 계획을 짰다.

  오늘

  1. 회를 먹는다

  2. 밤바다를 본다.

  3. 맥주를 마시고 잔다

  내일

  1. 11시에 체크아웃

  2. 아침 겸 점심 먹기 (후보: 물회)

  3. 바다 보기

계획 끝. 쏘카를 예약하고, D가 합류하고, 가까운 집에 들러 필수품만 챙기고 바로 동쪽으로 떠났다. 2021년 6월 11일을 시작으로 우리는 총 5번의 번개 여행을 떠났다. 4번의 바다와 1번의 두물머리로-

우리가 ‘오징어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바다 여행을 다닌 지 1년이 흘렀다. 2022년 7월 22일 금요일, 이번 여행도 갑작스러워서 자연스러웠다. 나는 금요일에 퇴근하고 오류동 집 근처에서 탈색을 하고 있었다. 심심해서 영상통화를 걸었고, 바다에 가자고 외쳤다. 약간의 협의 과정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대충 이런 과정으로 여행을 떠났다.

  (8:09pm) H가 유투브로 인천패밀리를 보다가 소래포구가 즐거워 보인다는 카톡을 보냈다.

  (8:36pm) 나는 영상통화를 걸어서‘지금이야? 지금이야!’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8:42pm) D의 거주 문제상 오늘은 어려울 것 같다고 1차 결론이 났다.

  (8:49pm) 잠시 후 D의 성공적인 협의(?)로 오징어청춘 바다 출동 확정!!

  (9:04pm) 숙소를 찾아보고 에어비앤비로 예약, 쏘카도 예약했다.

  (9:40pm) H와 D가 1차 합류, 오류동으로 달려왔다.

  (10:52pm) 나는 탈색을 마치고 오류동 코노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합류했다.

  (11:31pm) 인천 바다 에어비앤비 도착!

 우리는 언제나 이런 속도로 바다 여행을 떠난다. ‘지금이야!’를 외치고 3시간 만에 또 바다에 왔다. 오징어청춘의 무계획 여행이 좋은 건 순간의 감정에 너무나 충실하기 때문이다. 심심하면 떠나자고 외치고, 대충 5번 지르면 1번은 떠난다. 가볍지만 진지하게 떠나자고 외치고, 못 간다면 파토요정 D가 신속하고 깔끔하게 정리한다. 항상 비슷한 패턴으로 떠나는 우리의 여행은 손발이 챱챱 맞는다. 특히 이번 여행은 D의 지휘 아래 알찬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는데..

• 1차는 야식 타임 : 치즈라면을 끓였는데 너무 짰다. 유부초밥이 맛있었다. 백 살까지 건강하자는 의미에서 백세주를 마셨다. ‘백 살까지~ 건강하게~ 오징어청춘~’
•  2차는 그림책 낭독 : 오류동 그림 책방에서 산 숀탠의 ‘여름의 규칙’ 그림책을 낭독했다. 동영상을 찍었는데.. 8월에 예정된 MSC by members_여름 그리고 수박 그림책 모임을 위해 낭독 연습을 해야겠다.
•  3차는 고민 나눔 : 집에 대한 고민, 직장에 대한 고민,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한 명씩 돌아가며 차분하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대화가 좋다. 누군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에 존중이 담겨있다. 소중한 친구들이니까 더욱, 내 기준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D와 H의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알아간다. 서로를 지켜주는 우리들의 태도가 좋다. 더 솔직할 수 있고, 더 많이 털어놓을 수 있다.
•  4차는 게임 : 언제나 우리는 재미있는 놀이를 한다. 이번 게임은 지난번에 너무나 재미있게 했던 ‘몸으로 말해요’로, 눈앞에 보이는 물건을 문제로 냈다. 나는 전기 파리채를 표현했는데 아무도 맞추지 못했다. 솔직히 잘 표현했는데 못 맞춰서 살짝 섭섭해. 저번에도 발 매트를 표현하느라 몸을 어찌나 흔들었는지 모른다. (tmi.언제나 밟히는 발 매트의 감정을 몸으로 표현했음)
•  5차는 TV :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슬렁슬렁 씻고, 내일의 집합 시간을 11시로 약속하고 잠이 들었다.

 나도 H도 잠을 설쳐서 3시간도 못 잤다. 푹 자고 일어난 D도 이내 피곤했고, 시작의 포부와 열정과 에너지는 살짝 내려놓고 카페로 갔다. 시끄러워도 해변가를 바라볼 수 있는 카페에서 함께 떠나오지 못한 Y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곧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시끄러운 카페를 떠났다. 우리는 무작정 달리다가 베스트 드라이버 H가 선택한 길목에 멈춰 바다를 바라봤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여전히 물 빠진 인천 바다에서 무리 지어 졸고 있는 갈매기 이야기는 또렷하게 기억난다. D는 혼자 떨어져 있는 갈매기의 안부를 걱정했는데, 지금쯤 무리로 돌아갔을까. 바다를 보는 날이면 D가 꼭 틀어주는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눕고 싶어서 철푸덕 바닥에 누워 나무를 바라봤다. 아카시아였다. 봄이 돌아오고 아카시아꽃이 피었을 때, 우리는 여전히 떠나고 있을까.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오징어청춘의 관계에 묘한 집착을 하게 된다. 소중한 마음만큼 불안하다. 우리가 지금 가진 공통점이  없어진다면 더 이상 떠나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 걱정과 불안의 시간만큼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관계란 마음처럼 되지 않으니까, 누군가 또‘지금이야’라거나‘바다로 떠나자’는 말을 꺼내면, 고민하지 말고 예스를 외쳐야지.

 대화의 여백을 바닷바람이 채우던 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D와 H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한 발짝 떨어져 생각을 바라보고 싶었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고, 바람이 내 몸에 가져다주는 감각을 느꼈다. 요즘 명상에 푹 빠져있는 걸 알고 있는 둘은 정좌 자세로 앉아서 눈을 감고 있는 나를 깨우지 않았다. 갑자기 바닥에 누워 아카시아 나무를 바라봐도, 지난여름 속초 바다에 이끌려 슬리퍼를 벗어던지고 바다로 돌진해도 막지 않았다. 마음이 이끄는 행동을 고민하지 않고 행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친구들, 얼굴 보고 말하면 부끄러우니까 일기장에서 대신 마음을 전한다. 나랑 같이 오징어청춘 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다음 여행은 말이야, 미리 계획하고 떠나보자~

*지난 일기에 엄청난 오타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일기를 쓰다가 얼마나 자주 코인노래방에 갔을까 궁금해서 정리해보니, 2021년 10월 1일부터 오늘까지, 약 10개월 동안 56번 갔더라... 225,000원을 써서 1,1771시간 동안 441곡을 불렀다.] 이 부분에서 1,1771시간이 아닌 ‘1,771분’입니다. 하하.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