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30일 토요일

오늘의 노래 : FOREVER YOUNG

일기 쓴 장소 : 따끈따끈 가오픈한 서울집시 한남점

 아! 내가 독립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3가지였다.

 1) 글을 쓰고 싶다. 더 꾸준히, 더 많이, 더 자주, 더 깊게-

 2) 아침 시간을 오롯이 혼자 보내고 싶다. 차 마시고, 글도 쓰고, 나 혼자 꿍냥꿍냥.

 3) 오롯이 나를 위한 공간을 나답게 채우고 싶다. (작업실으로 채워지지 않는 갈증 해소)

 그래,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2019년 첫 번째 독립출판 <오지마섬일기> 이후로 꾸준히 책을 만들고 싶었다. 매년 독립출판을 하겠다고 부푼 꿈을 꾸었지만, 아아 벌써 3년이 흘렀다. 당장 책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글을 쓰고 싶었다. 글 쓰는 체력, 그러니까 ‘글력’을 쌓고 싶었다.

 본격적으로 독립을 꿈꾸던 2021년 2월, 밑미에서 진행하는 ‘내 역사를 돌아보는 글쓰기’를 통해 아침마다 집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리추얼 프로그램인 만큼 그때부터 ‘꾸준함’에 집착했다.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쓰지 않으면 독립과 멀어질 것 같았다. 과거의 집, 현재의 집 그리고 미래의 집에 대한 생각을 연필로 꾹꾹 눌러 담은 시간은 간절함이었고, 꿈이었고, 환상이었다. 리추얼을 함께 하는 분들과 첫날 줌으로 인사를 나누는 날이면 ‘한 달 동안 꾸준히 집에 대한 글을 쓰고, 마지막 인사 나누는 날 독립했으면 좋겠어요. 하하’라고 말하곤 했다. 그렇게 나는 2월, 4월, 9월, 11월, 12월까지 총 5달 동안 집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갔다. 꾸준히 쓰는 날도 있었고, 잠시 동굴로 들어가 글쓰기를 놓아버리는 날도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통 보지 않았던 초여름, 우연히 맹그로브를 알게 되었고 와디즈를 통해서 살아보기를 신청했다. 2021년 7월 23일 금요일, 체크인 시간에 맞춰 시간 연차를 쓰고 맹그로브로 들어왔다. 때마침 파트 회의가 있었는데, 수빈님과 상혁님에게 신나게 맹그로브를 자랑한 기억이 난다. 2박 3일 살아보고 앞으로 살 집을 선택하는 건, 사실 성급한 결정일지도 모른다. (허나 당시 나는 성급함이 간절했다.) 여기 살겠노라 확신할 수 있었던 건 MSC(Mangrove Social Club) 덕분이었다. 맹그로브에 머무는 동안 <글쓰기의 쓸모> 저자 손현 작가님의 북토크를 들었다. 그 날을 계기로 ‘마감’과 ‘독자’를 찾아 나섰고, 일기장 뉴스레터 ‘미하다 일기장’을 시작할 수 있었다. 북토크 내용이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영감이 다짐으로 이어졌고 어느새 24번째 페이지 일기를 보내고 있다. 월 2회 발행으로 시작했지만, 테드의 조언으로 매주 발행으로 바꾸고(앗, 그런데 매주 발행한 적은 없다) 글 쓰는 삶에 마감을 만들었다. 한 달에 1번 보낸 날도 있지만, 마음만큼은 ‘쓰는 일’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그거면 됐다. 이 글이 당장 무엇이 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일기장 한 페이지로 존재해도 충분하다.

 간절하게 독립하고 싶었던 두 번째 이유는 ‘아침 시간’ 때문이었다. 스물여덞 겨울, 나에게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다. 단 한 번도 가족과 떨어져 살아본 적 없었고, 사는 내내 등을 맞대고 잠이 들었는데 내 방이 생긴 것이다. 방은 작은 독립이었다. 동시에 온전한 독립은 아니었다. 문이 있지만 문이 없는 집, 언제나 벌컥 열리는 문의 역할을 의심하며 독립을 꿈꾸기 시작했다. 방이 생긴 이후로 창밖으로 보이는 산을 바라보는 아침의 취미가 생겼고, 밑미를 통해서 리추얼을 만들고자 애썼다. 가족들이 자는 새벽에 물을 끓여 보이차를 내려 마시고, 빈티지 책상에 쪼그려 앉아 글을 썼다. 나의 아침 시간을 침범하는 가족이 있었고, 나 또한 가족의 수면시간을 침범했다. 독립 직전에 아침에 대한 욕망이 폭발했는데, 옥상에 올라가 돗자리를 펴고 노래를 듣다가 (작게) 부르고 일출을 보곤 했다. 이런 아침이 나를 독립으로 이끌었다.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아침을 더 잘 보내고 싶었다. 독립을 꿈꾸던 시절 ‘내 역사를 돌아보는 글쓰기’였던 리추얼은, 내가 독립한 후 ‘나를 닮아가는 방 만들기’로 타이틀이 바뀌었다. 두 번이나 했던 프로그램이지만 또 덜컥 신청했고, 혼자의 아침에 집의 기억을 붙잡아 기록했다. 현재의 집을 써 내려갔다.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 나를 위한 한 끼를 잘 챙겨 먹고 ‘식사일기 쓰기’ 리추얼도 신청했다. 그 외에도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만들기’로 매일 한 곡의 음악 디깅을, 당찬 포부로 시작했던 ‘달리기와 글쓰기’로 러닝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4주 동안 딱 2번 달리고 포기했다. 타투하고 땀이 나면 안 된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다양한 일로 아침을 채웠다. 최근 3주는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나에게 명상이 가장 필요한 순간은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났을 때 혹은 일을 이끌다 못해 쫓기게 되는 순간이지만, 아침에 일어나 수련을 한다. 스스로를 챙기지 못할 때를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멋지고 특별한 나만의 리추얼을 만들고 싶었는데, 꼭 필요한 명상을 취하기로 했다. 내게 명상은 아침의 양치 같은 일이라, 이제 명상을 안 하면 찝찝하다. 돌고 돌아 명상으로 정착했지만, 명상이 아침에 찰싹 붙으면 또 다른 리추얼을 만들어봐야지. 아침은 밤보다 깊고 뜨거우니까.

 마지막으로 공간을 나답게 꾸미고 싶었다.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서는 조명을 바꾸는 일도 쉽지 않았다. 새집의 조명을 떼어내고 빈티지 조명으로 바꾸겠다는 큰딸에게 엄마는 꿀밤을 세게 쥐어박고 싶었겠지만 꾹 참아주었다. 눈치를 보던 나는 벽지 바꾸기는 포기했다. 이사 첫날 축음기과 빈티지 초등학교 책상, 축음기 돌판과 빈티지 시계가 용달로 들어왔다. 닮고 싶은 물건으로 첫 번째 방을 채웠다. 독립하며 모든 수집품을 들고나오지 못했지만, 축음기와 빈티지 책상은 소중히 챙겨왔다. 나와 닮은 물건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싶었다. 내 방이 나를 위한 전시장이 되기를 바랐다. 물건의 위치를 조금씩 바꾸며 새롭게 시도하고 실패하는 일이 즐거웠다. 맹그로브의 노크노크를 따라 ‘녹놐’을 시작해 내 방을 열어 보인 건 그런 탓이었다. 사랑하는 물건으로 가득 채운 나를 닮은 방을 함께 기억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은근한 영감이 되길 바랐다. 똑같은 현관문에 스티커나 포스터로 자신을 표현하고, 모두가 나답게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녹놐 이후로도 방 구조와 수집품의 위치를 꾸준히 바꾸며 의도를 담았다. 더 글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재택근무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차 마시는 공간, 방명록존, 음악감상실을 만들기도 했다. 작은 방이지만 공간을 기획하고 달라진 일상을 관찰하는 일은 너무나 즐거웠다. 두 번째 집에서 펼칠 재미난 일을 위한 경험과 양분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