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진짜 내 마음을 모르겠어’라고 말하며 너무 오래 외면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뭘까, 무슨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멋진 어른이 되고 싶은데 그럼 ‘멋지다’의 기준은 뭐지? 수없이 나에게 물어보았지만, 생각과 감정은 솔직하지 않았다. 결국 어떤 시간에,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없음을 느끼며 무너졌다. 바닥을 찍었다. 2021년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거짓말처럼 찾아온 공황장애 때문에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이상신호를 보내면, 숨을 쉬기 위해서 글을 썼다. 유일하게 숨을 쉬는 방법이 '글'뿐이었다. 미팅을 하다가, 티타임을 하다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대화를 이끌어 가야 할 때, 걷다가, 밥을 먹다가 자주 숨이 벅찼다. 9호선에서 과호흡증후군 트라우마가 생긴 이후로 <오로르>의 문장을 더 자주 떠올리고, 숨을 찾았다.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세. 정말로 무섭고 힘든 일과 마주쳤을 때에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열까지 세는 거야. 겁먹거나 놀랐을 때에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거나 멀리해야 할 것을 찾게 되거든” - 오로르

 혹시나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릴까, 내가 무섭던 시절. 불안하고 힘든 감정에만 빠져들고 싶었다. 그런 상황에 그런 감정을 느낀 게 잘못된 건 아니다. 슬플 때 슬픈 감정을 느끼고, 불안할 때 불안감을 느끼는 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 한 가지 감정에만 매몰되는건 나를 갉아먹는 일이었다. 감정은 적절하게 표현하고 털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주 숨을 마시고, 숨을 내쉬는 연습을 했다. 심각한 호흡 곤란이 찾아와도 하나, 둘, 셋, 딱 3번만 천천히 숨을 쉬고 나면, 그 숨이 나를 살렸다. 여전히 놀라거나 무섭거나 불안하면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싶어진다. 너무 오래 숨을 멈추고, 숨 쉬는 것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올지 모른다. 이제는 두렵지 않다. 숨을 고르며 <잃어버린 영혼>을 기다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으니까.

 명상을 시작하기 전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자 심리 상담과 병원도 찾아갔다. 4명의 상담사 선생님을 만나고, 1명의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알았다. 결국 그런 상황에서 나를 챙길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적절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명상을 한다. 명상을 통해서 어떻게 나를 대하고, 돌봐야 하는지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감정을 오롯하게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것은 나에게 참 어려운 일이다. 어느 날은 마음만 챙겨서 감정이 예민해지고, 어느 날은 몸만 챙겨서 감정에 날이 섰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보다 명상을 먼저 하기까지,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1년 5개월이 걸렸다. 나는 명상을 통해 생각을 멈추고(생각하는 뇌의 영역을 쉼 모드로 들어가게 하고) 감각을 깨우며(감각하는 뇌의 영역을 활성화시켜서) 쉼을 찾았다. 종종 동굴로 들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건, 바쁘게 사느라 놓쳐버린 시간의 감정을 곱씹기 위함이었다. 마치 <잃어버린 영혼>에서 주인공이 잃어버린 영혼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 처럼, 충분히 숨을 고르며 살아가는 것, 그 시간을 응원하는 것, 그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다시, 사랑!

 여행 내내 사랑을 이야기하던 우리들 (나와 J 그리고 E) 우리는 다양한 사랑을 이야기했다. 사랑으로 피워낸 이야기를 정리하는 중, 미하다 일기장에 담고 싶은 사랑은 나를 향한 사랑이다.

 힘든 하루를 보낸 나를 돌봐주길 바라는 딱 한 사람이 있다.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 (포옹 가사처럼) 몰래 울거나 몰래 웃지 말고, 감정을 꺼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현재의 생각과 감정을 동굴 깊숙한 곳에 담아두고, 차곡차곡 정리하고, 보기 좋은 모습으로 털어놓는 것이 편하지만, 그 시간은 외롭고 버겁다. 그만 동굴에서 나오라고 말해줄 수 있는게 나밖에 없다.

 나를 위한 사랑, 별거 없다. 힘들 때 힘든 거 숨기지 말고, 괜찮은 척 하지 말고, 그저 내가 나를 속이지 않으면 된다. ‘힘들었겠다, 너무 속상하겠다, 수고했다’ 타인에게 항상 하는 말을 나에게 건네면 된다. 어렵지만,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