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수업 준비물로 노래를 들고 가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나는 스웨덴 세탁소의 '목소리'를 들고 갔다. 지난 사랑을 생각하며 힘껏 울고 싶어서 듣던 노래였다. 각자 준비한 노래를 듣고,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그리는 수업이었다. 내가 준비한 노래가 나오는 순간, 갑자기 수도꼭지가 터져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뛰어나갔다. 우리가 함께였던 시간은 무려 7년이었다. 이제 '우리'라는 단어를 쓸 수 없게 된 지 4년이 흘렀다. 힘들지만 행복했다. 다시 나를 찾을 수 있어서, 내 마음을 온통 나에게만 쓸 수 있어서 슬프지만 나다운 시간을 보냈다.

 요즘 내 사랑이 한 챕터 정리되고 있음을 느낀다. 길었던 사랑은 지나간 사랑이 되었고, 가장 최근의 사랑을 마무리하는 중이고, 혼란스러운 짝사랑은 사실 사랑이 아닌 동경이라 믿고 있다. 내가 가진 결핍을 결핍으로 느끼지 못하는 네가 멋있어 보였다. 만약 네가 떠날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저 너와 친한 친구가 되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네가 가진 몇 가지 장벽 때문에, 그 벽을 허물 수 없어서, 이 마음을 사랑이라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 연필로 거짓말을 쓰고 싶지 않은데, 내가 지금 거짓을 쓰고 있는 걸까. 그저 사랑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네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어제 새벽에는 그 믿음이 날 헤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수역에서 지하철을 환승하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사랑의 시작이, 가장 길었던 사랑의 시작과 비슷하다. 스물하나, 타오르듯 사랑에 빠졌던 그 순간의 그 사람과 네가 닮았다. 그때의 그 사람보다 네가 더 깊고 짙다. 네가 하는 일에 대한 고민을 듣다가 ‘잘 모르겠어’라고 말했을 때 너를 힘껏 응원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네가 마냥 반짝거렸는데, 이제는 너를 생각하는 마음이 두렵다. 그런 사랑 말고, 응원 말고, 서로가 각자의 꿈을 품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나에게 당당하고, 너도 너에게 당당하고, 당당함이 단단함이 되어 서로의 나무가 되어주면 좋겠다.

 나는 네가 아닌 나를 중심에 두고 싶다. 다시 너를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나와 같은 불안을 품은 너를 꼭 안아주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길 바란다. 이게 너를 생각하는 마지막 일기이길 바란다. 잘 지내, 언젠가 우리가 또 우연히 마주쳐버린다면, 혹시나 내가 그 우연을 붙잡아 버린다면 또 너를 모른 척할 거다. 우리가 있던 시간을 다시 꺼낼 자신이 없다.